강화도 조약의 비극/힘이 약하면 국권을 빼앗기고 상대국의 노예가 된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1875년 강화도 앞 바다에서 무력으로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극심한 불평등 조약인 이른 바 강화도조약을 맺어 마침내 조선 침탈의 문을 연후 항구 개항을 통해 침략무역이 가능해졌고, 조선 내 몇 개 항구에서 일본인의 치외법권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의 탈법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조선은 조약 체결을 계기로 이후 미국. 영국.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의 무리한 요구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일본은 이 조약을 계기로 세계열강의 하나로 떠오르게 되었다. 일본 군함 운요오호가 불법으로 부산 해역에 접근하는가 하면, 또한 불법으로 강화도에 내렸을 때 조선수군은 경고로 포를 쏘아 물러가라 했지만 치밀한 계산으로 접근한 저들의 계략을 막을 수가 없었다. 운요호의 근대식 우수한 포는 강화도 초지진을 초토화 시켰고 조선 수군의 포는 정조준도 잘 되지 않는데다 사거리도 짧아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 들은 의기양양하게 강화도에 내려 조선수군을 죽이고 죄 없는 양민들도 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들의 군사력에 겁을 먹고 실로 불평등하기 짝이 없는 강화도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나라가 군사력이 약하면 군사력이 강한 나라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좋은 교훈이지만 문제는 교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권을 빼앗겨 상대국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을 고금의 역사는 잘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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