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9:07 (금)
일산 신도시에 이 시대의 스승 한 분이 살고 계셨다.
일산 신도시에 이 시대의 스승 한 분이 살고 계셨다.
  • 감충효
  • 승인 2019.01.05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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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고향사람들이 대 여섯 명 모여 서울 둘레 길을 걷는다 하여 같이 합류하였습니다.

서울 둘레 길은 서울의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총 연장 157km의 도보 길로 총 8개 코스로 구성되어 코스별로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 이야기 거리가 산재할 뿐만 아니라 산길과 평탄한 길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비교적 먼 거리지만 마음먹고 돌면 모든 코스를 섭렵하기가 그리 어려운 건 아닙니다. 필자도 이미 8개 코스를 틈틈이 부지런히 올라 서울시로부터 완주증을 받은 바 있습니다. 감동코스로 각인이 되어 지금은 두 번째로 돌고 있습니다.

앞서서 4대문 4소문을 거치는 한양 도성 길 코스를 완주한 바 있는데 이 코스는 빨리 돌면 수 일만에도 돌 수 있는 길이지만 문화재를 좀 눈 여겨 보면서 돌려면 몇 번에 나누어 걷는 것이 알찬 순례길이 되기도 합니다.

옛날 서울 둘레 길을 돌 때 동행했던 송원(松園)이라는 아호를 쓰시는 필자보다 6살 많으신 선배 한 분이 일산의 정발산을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면서 노익장을 보내시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올 봄 진달래 개나리도 거의 지고 벚꽃이 피어날 쯤 전화를 드렸더니 너무 반가워하시면서 필자를 초청하였습니다. 정발산역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지만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고향 까마귀를 만나는 심정으로 횡 하니 그 쪽으로 내달렸습니다.

 

평심루-평정심을 갖게하는 누각

정발산은 공원 개념의 야트막한 산으로 등산코스가 다양하고 누각이나 정자, 놀이 기구 등이나 각종 볼거리로 잘 가꾸어 놨기때문에일산 신도시 시민들에게 아주 큰 사랑을 받는 산입니다. 산길을 걷는 도중 만나는 사람마다 선배님은 구면인 듯 인사를 나누시며 올라가시는 걸 보니 이쪽의 터줏대감이나 다름 없으셨습니다. 손수 가지고 가신 보온병의 물에다 커피를 타시며 지나다니시는 주변의 모든 분들께 따끈한 커피 한잔씩을 권하시는 것을 보고 친절과 배려와 화목으로 삶을 영위하시는 분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물을 찍으시다가 야생화를 만나면 줌을 장착한 카메라로 정밀 사진을 촬영하시는 모습을 보며 사진예술에도 취미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지요.

커피를 한 잔 대접 받으시고 환담을 나누시던 분이 제안을 합니다.

“송원 선생님~ 오늘은 제가 점심을 사겠습니다. 시간이 허락하시면 옛날 만나서 점심 같이 먹던 곳을 오실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고향 분도 오늘 이쪽을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나누던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시내로 내려와 평소 송원님이 산을 오르내리시며 보아 오신듯한 가로수 옆을 지나시면서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띠며 필자에게 저기 좀 보라며 눈짓을 하십니다. 음양의 성기 모양이 어찌 그리 절묘한지... 음기는 자연 그대로인데 양기는 약간 다듬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한 나무에 그것도 아주 근접한 곳에 날 보라는 듯이 뽐내고 있는 당당한 그 모습이 원초적 토테미즘의 주술처럼 보여 물기 오른 좋은 계절에 태기 없는 부부가 이 걸 보면 좋은 소식이 오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아주 건강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웃음을 자아내게 한 가로수의 모습
웃음을 자아내게 한 요상하게 생긴가로수의 모습

송원님과 같이 찾아온 곳은 상당히 격조 높은 요리 집이었는데 점심을 제안 하셨던 분이 다른 친구 한분과 함께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점심을 사시는 이 분이 대단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들먹이면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는 내로라하는 가문의 후손이셨는데 온 세상 흐름에 통달하신 분 같이 느껴질 정도로 해박한 경세철학(經世哲學)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장시간 서로의 정보를 나누다가 송원님은 또 댁으로 저를 초청하셨습니다.

몇 년 전에 상처하시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계신 집은 일산 신도시의 고즈넉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어찌나 서재, 거실 등 생활공간을 잘 정리 정돈 해놓으셨는지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하였습니다. 오래된 고서와 고전과 월간물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서재는 부러울 정도로 풍족하고 다양했습니다. 서재에서 각종 책자와 희귀한 스크랩 자료를 보며 설명해 주시는데 감히 따를 수 없는 철학적, 문학적, 역사적 소양에 감탄하였고 각종 물품들에 폐품을 활용한 생활의 지혜와 우리 역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꿰뚫고 계시는 혜안에 감탄하면서 시대의 진정한 스승 한 분 뵈올 수 있었다는 고마움에 젖어든 하루였습니다.

‘국록을 받아먹는 국민의 대표자라는 자들아! 이 송원 선생의 반만이라도 해라. 은혜도 모르는 자들이 그 분들의 묘혈을 파는 이 환란에 무슨 희망을 보랴!’

 

송원(松園)님이 지나간 달력과 전단지로 만든 수첩
송원(松園)님이 지나간 달력과 전단지로 만든 수첩

필자는 필자의 시집을 선물하였고 송원님은 김형석 교수의 신간을 저에게 서명하시며 주셨습니다. 과자 포장상자에다 달력이나 선전 전단지를 잘라 넣은 두툼한 메모지와 그리고 그 자른 종이로 손수 제작한 문고판 크기의 200쪽 분량 수첩도 한 권 주셨습니다. 지금 필자는 그 메모지와 수첩을 편리하게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시 한편씩을 지어 옮긴 다음 잘 보관하기에 딱 좋고, 가지고 다니면서 퇴고를 하기에도 참 편리합니다.

귀한 차와 다과를 대접받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댁을 나오는데 또 현관에서 선물을 줍니다. 생활용품을 다 쓰고 버릴 때 그 막대기를 자르고 손잡이도 만들고 바닥 부분에는 바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게 뾰족한 철심을 박은 만년 스틱이었습니다. 역까지 나오셔서 필자를 전송하는 송원님과 정말 참신하고 즐겁고 건강하게 보낸 유익한 하루는 이렇게 유종의 미를 거두고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음엔 진짜 산행다운 산행을 한 번 하자면서 운길산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일산에서의 만남이 금년 4월 초였고 그 후 운길산에서의 만남은 5월 25일에 이루어졌으니 거의 두 달을 조금 지나 만났는데 운길산에서 만난 하루는 그야말로 인간승리라는 또 다른 주제를 담고 있기에 다음 기회에 별도 수필형식으로 올려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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