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8 12:51 (월)
발행인 칼럼 l 생명에 대한 예의
발행인 칼럼 l 생명에 대한 예의
  • 조세윤
  • 승인 2018.08.09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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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나간다. 멀리 서산으로 해가 진다. 하늘이 온갖 색으로 물들여질 때 아이들을 바닷가 몽돌 해변에 앉혀놓고 하늘의 변화를 보게 한다. 한참이 지난 후에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지금 저 하늘에서 너희들이 무슨 색을 보았니 하고 물어보면 참 다양한 색들을 이야기 한다.

빨주노초파남보는 기본이고 물색 하늘색 땅 색 나무색 등등. 그런데 한 아이가 엄마색이라고 한다. ‘엄마 색’ 나는 어리둥절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무슨 색을 보았다고? ‘엄마 색’ 아이는 다시 또렷하게 엄마색이라고 말한다. 나는 절대 그 색을 알 수가 없다. 그 아이에게만 보이는 엄마색은 어떤 색일까?

고대 사가들은 깨어진 기와 조각에서 그 시절의 풍물을 읽어내고 사회상과 역사를 알아낸다. 그런데 바닷가 몽돌 밭을 헤집고 다니며 돌을 줍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수석가라는 사람들이다. 작은 돌 하나를 주워들고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감탄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다고 한다. 작은 몽돌에 흐릿하게 새겨진 여인의 형상을 보고 저렇게 감동하고 있다.

그들은 손바닥 위에 올려진 작은 돌 하나에서 우주의 역사를 읽어내고 있다. 신의 작품이 아니라 신의 방치가 만들어낸 저 여인이 나를 만나기 위해서 수 억 년을 저렇게 파도에 부딪히고 쓸리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드디어 나를 만나게 되었다고 미친 듯 감동한다.

낱낱의 생명이 소유하고 있는 자기들 만의 독립된 의미들이 생명 모두에 존재한다면, 아이의 엄마 색과 돌 줍는 사람의 연인처럼 낱낱의 생명들이 지닌 독립된 가치들의 이야기. 아직 다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삐뚤빼뚤한 자연이야기를 더 들어 보아야 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 역에 살고 있는 대추귀고둥이 있다. 물 속에서는 아가미호흡을 하고 육지에서는 폐호흡을 할 수 있는 이 고둥은 지금 멸종 위기종이다. 지금 열심히 이 친구와 사귀어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보아야 한다.

음습한 숲 속에 살면서 오월에만 번식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여덟가지 털빛을 가진 아름다운 팔색조.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깃털을 만들어 가질 수 있을까? 이 친구도 멸종위기종이다. 더 늦기 전에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

저들이 가진 의미, 아직 우리가 알아내지 못한 저 생명들의 가치가 사라지기 전에 저들과 더욱 친하게 지내면서 들어보아야 한다.

거들먹거리는 인류의 지식은 아직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가치를 그 존재 분의 일 만큼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노을에서 보는 아이의 엄마 색, 몽돌 밭에서 돌 줍는 사람이 만난 억년의 연인과 기수역에 살면서 물속에서도 호흡하고 육지에서도 호흡하는 대추귀고둥의 이야기와 바닷가의 습한 숲속에서 노래하는 팔색조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아니 더 들어야 한다. 그래야 예의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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