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9:17 (금)
주민사업체 활성화를 위한 여행상품 개발 팸 투어의 명암
주민사업체 활성화를 위한 여행상품 개발 팸 투어의 명암
  • 감충효
  • 승인 2018.12.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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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유배문학관 (첫 집결지 )

 

첫째 날의 감격과 충격

12월의 1박 2일(22일~23일) 팸 투어에 초청을 받고 두 분을 모시고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은 그다지 가볍지 못했다. 그 전날 21일에 포천의 어느 온천에 아내와 같이 갔다가 업주의 안일한 시설 점검의 영업행위로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크나큰 상처로 119에 실려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설상가상으로 23일은 서울의 문중회의가 종로 5가에서 계획되어 있어 중요한 문중 숙원사업을 의논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어떤 일이 3개정도 겹치면 당연히 그 선택에 조금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포천 온천에서의 뜻밖의 사고에서는 업주가 영업상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 대처하는 태도가 너무나 안일하여 안전사고에 대한 불감증을 넘어 인간성 상실의 현장을 여실히 본 충격도 크다면 크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라면 고향의 이 번 팸 투어를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외지인 두 분이 같이 약속한터라 치료중이지만 약을 투약하며 우등고속 버스를 타고 공기 좋은 고향에 해풍으로 상처소독도 하고 정다운 철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정양하는 셈치고 남부터미널의 고향 행 버스에 다른 두 분과 함께 몸을 실었다. 문중의 일은 총무와 나이 많은 조카에게 부탁을 해야만 했다.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할애하는 이유는 그만큼 황당한 일을 당하고 기분이 나빠도 고향에 대한 좋은 일들에 대해 무엇인가 보탬을 주고 싶기도 하고 고향을 찾아 유쾌한 마음으로 마음이 서로 통하는 사람끼리 고향을 돌아다니다 보면 큰 보람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남해터미널에 도착하여 가까운 거리지만 택시를 타고 유배문학관에 가니 이 번 팸 투어를 기획한 조세윤 회장이 우리를 반겨 맞는다. 각지에서 모이신 초청 인사들은 한국물새네트워크, 한국 조류관련 전문가, 남해군 관내 언론사, 서울, 부산 향토 사진작가로 해당단체에서 30명을 초청한 걸로 알고 있고 이 분들과 함께 1박 2일의 팸 투어를 시작하는 것이다.

장소를 옮겨 선소 횟집에서 생선 미역국과 회로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남해군청 담당과장을 대리한 분이 남해를 방문한 전문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신다. 사실 모든 행사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있어야 모든 면에서 순조롭다. 주변의 장량상 동정마애비의 설명을 조회장으로부터 듣는데 강진만의 잔잔한 바다위에 물새들이 간간이 뜨고 앉는다. 탐조관광의 대상이 조류이니 어김없이 카메라가 작동되고 망원경이 등장한다. 횟집 바로 앞과 옆이 그 유명한 강진만 철새 도래지며 갈대밭이다. 서서히 해안 도로를 걸으며 탐조 활동이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다행스럽게도 오래전에 심은 도로와 갈대밭 사이로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띠를 두르고 있고 사이사이에 심은 동백나무가 있어 조심조심 소나무와 동백나무 사이로 탐조활동을 해도 철새들이 놀라 날아가지를 않고 갈대 숲 사이의 물위를 유유히 헤엄치며 따스한 남쪽나라 남해 강진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아! 고향에 왔구나. 물새 우는 따뜻한 내 고향 강진만 갈대밭에…….’

봉천과 강진만은 이런 곳이었다.

잔잔한 감동이 넘쳐흐른다. 멀리 망운산 봉우리의 그림자가 봉천(鳳川)과 강진만 잔잔한 수면위로 내려앉는다. 봉천의 물에 노니는 피라미들의 은빛 비늘과 떼 지어 노니는 붕어와 잉어들의 유영에 어릴 적 추억이 묻어난다. 어딘가에 참게와 장어들과 자라들과 물메기들도 굴을 파고 숨어 있을 것이다. 읍내 사람들의 휴식처요 빨래터이며, 아동들의 수영장이었고 겨울엔 썰매장이었으며, 내가 태어난 죽산[竹山:대뫼] 사람들은 물론 성내(城內) 성밖 사람들의 천렵장이었던 봉천의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곱실이 쓸기’가 있다. 봄철 못자리를 마치고 조금은 한가한 시기가 되면 우리 동네 죽산 사람들은 이 봉천과 동뫼의 잔디밭에서 봄놀이가 벌어진다.

동네 청년들이 가마니나 멍석을 길게 말아 학익진(鶴翼陣)을 펼치고 봉천의 자갈밭을 ‘시이소~ 시이소’구호아래 좌우로 훑어 내려가면 골태기, 곱실이, 은어, 피라미, 미꾸라지, 붕어, 자라, 실장어, 송사리, 민물새우, 가재는 물론이고 장구애비, 잠자리 애벌레, 물장군, 물매암이, 소금쟁이, 물자라 등 수생곤충들까지 반두에 갇히게 되고 청년들은 ‘우~~~’하는 함성과 함께 묵직한 반두를 끌어 올리면 중간 정도로 자란 뱀장어와 강진 바다에서 올라 온지 며칠 안 되는 실장어는 알아서 반두 그물코를 빠져나가게 되고 퍼덕이는 알 밴 물고기와 잔챙이와 수생곤충들은 다시 물속으로 돌려보내며 쓸 만한 놈들은 양동이에 담게 되는데 이렇게 몇 번 하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먹을 수 있는 국거리가 마련되고 국에 넣을 푸성귀는 근처 마늘 밭에서 캐온 마늘과 시금치가 지천에 널려있고 봄동배추와 상추와 부추와 쪽파 대파도 주변의 밭에서 무한정으로 공급된다.

일찍 심은 마늘밭에는 이미 마늘 쫑다리가 올라 올 때라 그 달착지근한 맛도 동네 축제에 선보이게 된다. 그리고 옆에 걸린 대형 가마솥 몇 개에서는 밥이 끓기 시작하고 다른 대형 가마솥에는 천렵해온 물고기로 국을 끓이게 된다. 또 한 쪽에는 통째로 삶는 돼지고기 냄새로 술꾼들은 안주가 공급되기를 기다리며 침을 삼킨다. 

이 때 쯤 봉천 자갈밭에는 석사대회가 무러익어 가며 멀리 세워져 있는 나무 기둥을 돌로 맞힐 때 마다 ‘간주야~~~!’ 하며 소리꾼이 외치게 되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깃발을 높이 든 동네 농악의 장구와 꽹과리에 맞춰 동네 사람들은 흥겹게 춤을 추게 된다. 또 한 쪽에는 척사(윷놀이)가 벌어지고 청년들은 모래밭에서 씨름으로 기술과 힘을 자랑한다. 그리고 봉천 용왕바위에선 한학과 역사에 밝으신 김노인께서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백일장을 열어 글 잘하는 아이에게 큰 상을 주시고 참가한 모든 아이들에게는 눈깔사탕을 선물로 주시고는 우리 동네와 읍성주변에 귀양 오신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지금은 기억에선 멀어졌지만 아마 소제 이이명 선생과 약천 남구만 선생, 후송 유의양 선생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를 유추해 본다.

전설에 의하면 이 용왕 바위는 이 동네에 귀양 온 고관대작이 앉아서 하염없이 한양땅을 바라보던 바위라고 전해온다. 이조 숙종조 목호룡의 고변과 정적들의 당파싸움에서 세종의 아들 밀성군의 8대손인 소제 이이명 선생이 남해에서 왕이 되기 위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모함을 받아 남해로 내려온 금부도사에 의해 한양으로 압송되어 사사된 역사적 사실이 있음을 볼 때 이 마을의 용왕바위는 이 지역에 막대한 인문학적 흔적을 남긴 소재 선생을 기리며 바위도 용왕바위로 부르고 전설도 전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용이 승천했으면 강진바다로 나갔을 텐데 그러지 못해 이무기로 바위 밑 깊은 물에 숨어 있기에 이 김노인께서는 이 곳에 멱감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고 여름철에 이곳에 멱을 감는 아이들의 옷을 몰래 감추셨으며 물밖에 나와 용서를 빌면 어른께서는 잘 타이르시며 옷을 돌려주곤 하셨다.

아마 아이들의 익사사고를 막기 위한 배려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실제로 어떤 아이가 이곳에서 멱을 감다가 온데간데없어졌는데 나중에 강진 바다 한 가운데서 떠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용왕바위 심연의 밑바닥에는 강진바다로 통하는 용굴이 있어서 깊이 들여다보면 빨려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전해온 좀 신비로운 곳으로 우리 어릴 적 뇌리에 남아 있는 곳이다. 그 용왕바위 주변의 논을 동네 사람들은 용왕마지기로 불러왔으며 용왕바위는 봉천의 직강공사에서 파괴되어 모두 석축 쌓는데 이용되었다. 전설이나 상상 이외의 역사적인 이야기는 남해유배문학관으로 옮겨진 봉천사 묘정비 큰 비에 비문으로 적혀 있다.

이렇듯 단합된 동네잔치는 거의 100호를 넘는 동네 규모에 200명 이상이 참가하는 상당히 큰 축제로 이틀 사흘 계속되고 사람들은 단합된 마음으로 그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두레와 인보정신(隣保精神)의 맥을 이어갔던 것이다. 60년대 조국근대화의 초석을 깔던 새마을 사업이 한창일 때의 일이다.

흔들리는 맹세,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옛날을 반추하며 바라보는 봉천에 내리는 물과 그 속에 노니는 피라미 떼들과 잔잔한 강진만 수면에 어리는 망운산 봉우리를 보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온다. 어쩌면 저 정답고 신령스러운 망운산 시루봉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의 프로펠러와 강력한 자기장과 고압전류의 전자파에 정령과 정기를 빼앗기지 않을까하는 안타까움에 젖어들 수밖에 없는 이번 고향방문은 정말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필이면 망운산이고 강진만인가? 새를 포함한 동물은 인간보다 청각이 몇 배가 뛰어나다. 무섭게 돌아가는 대형 프로펠러의 진동음과 반복되는 난반사에 괴로움을 당할 것은 뻔하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의 판넬에서 쏘아 올리는 반사광을 철새들이 기피할 것은 더욱 뻔하다. 그리고 고압으로 흐르는 전류도 위험하다. 어느 날 이번 장마나 태풍처럼 전선이 물에 잠긴다면 전체 갈대밭과 주변의 철새나 수생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판넬이 파손면 유독물질이 흘러나올텐데 이를 또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이미 몇 년 전에 무슨 공해를 유발할 수 있는 조선시설이나 발전시설 등을 우리 고향에 들이지 않고 미래의 무한한 가치를 위해 청정지역으로 남아있기로 군민투표를 통해 확실한 방향을 정한 바가 있다. 그 맹세가 흔들리고 있다. 세태가 흔들리고 배신의 시대라고 하지만 눈앞의 이익에 눈멀어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내 고향 푸른 해풍은 아직까지 청정해서 그 바람을 먹고 자라는 마늘과 시금치나 약초가 바로 청정 보약이며 보물이다. 맑은 해풍과 미네랄의 기운으로 윤기를 더욱 강력하게 발산하는 동백나무 잎 사이로는 동백꽃 역시 붉게 탄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에서 자라는 어족 자원은 미래의 희망이다. 회원들은 해안도로에 줄지어 선 청솔 푸른 바람과 동백나무의 윤기어린 잎 사이에서 청정 남해를 느끼며 갈대숲 사이로 흐르는 봉천 탐조길을 타고 오르며 철새를 만난다. 쇠백로가 여유롭게 서있는 야트막한 큰 웅덩이에 멀리서 맨눈으로는 식별이 불분명한 한 떼의 새를 본다. 다시 위쪽으로 눈을 돌리니 큰고니가 깃을 치며 여러 마리 노닐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의 설명을 들으며 강진만 철새도래지 관리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또 한 번 느낀다.

어느 날 불도저를 동원해 그 작은 호수의 매립을 시작하는 바람에 큰고니떼가 크게 놀라 모두 반대쪽으로 날아갔는데 얼마 전 공사가 끝나니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고 어느 누가 철새도래지로서의 높은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적어도 철새도래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며 관광객이 올 수 있게 하려면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지난 번 태풍의 영향으로 밀려 내려온 각종 폐비닐이나 플라스틱 종류의 쓰레기가 길옆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니 참으로 철새도래지로서의 난맥상을 본다.

이 길은 철새 도래지를 돌아 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만 읍에서 봉천을 타고 내려와 강진 바다 해안도로까지 연결된 군민들의 산책길이기도 한데 하루 빨리 이 지저분한 쓰레기를 처리해야 할 것 같다. 그것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태는 바로 쓰레기의 집합체인 쓰레기 매립장이 옮겨갈 약속을 어기는 것 같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말 안 된다. 쓰레기 매립장에는 알게 모르게 악취나 침출수가 흘러 나올텐데 그 오염된 물이 강진바다로 스며들 것을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어린 시절을 생각한 봉천 건너기

산책로를 타고 오르다가 징검다리가 있는 곳에서 같이 간 두 분이 벤취에 앉아 쉬고 있는 틈을 타서 어릴 적 추억을 반추하며 그 징검다리를 건너 반대쪽으로 갔다가 못 볼 것을 본다. 갈대 숲 길 사이로 널부러진 철제 기둥과 철판들이 얼마 전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대변해 준다. 태양광 발전을 하기 위한 판넬을 얹어 지지하기 위한 바로 그 철기둥과 철판들이다. 그리고 침수한 물에서 건져낸 판넬들, 아직 개봉도 못한 채 갈대밭 주변에 쌓여 있는 것들, 이렇게 갈대숲과 외진 곳에 숨겨 두어도 하늘은 보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다 본다. 새들의 눈은 더 밝으니 하늘에서 더욱 정확하게 내려다본다. 만약에 내년 2월 15일까지도 치워지지 않는다면 제1회 보물섬 남해 한국철새박람회를 보러오는 전문가는 물론 참가하는 전국의 관광객이 다 볼 것이며 세계적인 조류학자들이 볼 것이며 외국관광객도 물론 이 풍경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돌아간 사람들은 또 이러한 난맥상을 전할 것이다. 아니 SNS로 실시간 전송될 것이다. 보통문제가 아니다. 빨리 정리되기를 바랄뿐이다.

 

처리해야 할 것들/깎아버린 갈대는 내년 봄이면 자라나겠지만...

지난 10월 태풍 콩레이로 인해 강진만으로 통한 이 철새도래지가 침수될 때 태양광 발전시설공사를 하고 있던 이곳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강진만을 간척할 때 쌓은 제방으로 생긴 늪지대인데 폭우가 쏟아지는 시간과 만조시간이 겹칠 때는 수문이 닫혀 물이 빠질 수 없으며 엄청난 수위로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는 곳이다. 이런 침수지역에 태양광 판넬을 깐다는 생각을 한 자체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이곳은 남해가 자랑하는 철새도래지어서 외래 관광객들이 탐조를 많이 오는 곳이다.

시설을 중단한 곳에 연두색 휀스가 둘러쳐 있었는데 판넬을 걷어 낸 바닥에는 헤아릴 수도 없는 쇠말뚝이 처참한 몰골로 줄지어 그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태양광을 받고 자라야 할 갈대는 이미 다 쳐내고 맨땅이다. 만약 태양광 판넬이 깔린다면 솟아오르는 갈대는 모두 쳐낼 것이고 그것도 귀찮으면 제초제를 뿌릴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리고 휀스에는 ‘위험 특고압’이라는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철새도래지에 이런 시설은 정말 고려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조류에 대한 홍보와 한국최고의 생태관관광지로서의 자림 매김 1호 페브루어리 플라워(February Flower)호는 이러한 난맥상부터 해결해야 순풍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

 

철새도래지에서 특고압이라니...

관광두레를 통하여 주민이 만드는 지역관광을 위한 2019년 제1회 보물섬 남해 한국철새박람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전국조류관련 단체 및 전문가를 초청한 팸 투어 현장의 현주소를 보며 나름대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보물섬 남해의 철새테마관광에 대한 프로그램지원과 새로운 탐조관광의 길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을 팸 투어 첫날에 받은 큰 충격이다. 서울에 사는 향우들은 고향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 고향사람들은 고향나무를 보지만 나와 같은 향우들은 고향 숲을 본다. 고향이 잘 되는 것이 향우들이 잘 되는 것이다. 가깝고 먼 조상들의 뼈가 묻혀 있는 곳이고 우리들의 근원은 고향에서 시작되었으며 정신적 안테나는 항상 고향의 주파수에 맞춰져 있다. 나는 내년 2월의 2019년 제1회 보물섬 남해 한국철새박람회를 손꼽아 기다린다. 더 많은 향우님들과 함께…….

나의 문필생활은 한 시라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2012년도 이후에는 발간된 적이 없는 재경남해향우회지 2012년도판 ‘남해가 그리운 사람들’ 향우회지 편찬위원장을 맡아 고향 10개 읍면의 스토리를 강조해 실었고 남해중/제일고 총동문회지 창간호 ‘망메새’의 주간을 맡아 역시 그러했고 지금의 재경노원구남해향우회장을 맡아 역시 고향을 노래한 회장 인사를 빠뜨린 적이 없다. 고향 까마귀들의 한결같은 합창이다. 개인 시집을 3권 내었지만 그 곳에도 고향에 대한 주제가 압도적으로 많다. 어찌 보면 향수병이다. 몇 년 전에는 한국문단원로 40여명을 안내하여 동네 후배가 운영하는 서면 바닷가 절벽에 위치한 어느 시설에서 1박 2일 워크숖을 개최한 적이 있는데 그 주제는 남해유배문학과 현대 남해출신 문인들이나 타지출신 문인들이 쓴 남해를 주제로 한 작품을 통해 남해의 정신을 알려드리는 것이었고 남해의 풍광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내년 2월에는 더 많은 사람을 모시고 고향으로 내려가 강진만 철새의 낙원을 거닐다가 오고 싶다. 이번 투어에 같이 가신 두 분은 모두 서울 태생이시다. 각 분야의 전문가이시며 시대를 꿰뚫어 보시는 높고 깊은 혜안을 가지신 분들이다. 이 분들이 남해를 보는 눈이 너무나 정확한 데 저어기 놀라고 있다. 이분들이 이 번 투어를 마치고 나에게 제안해 온 것은 셋이서 남해로 내려와 살자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정했다. 내려올 곳은 당연 이 강진만 철새 도래지 부근이라는 것이다. 정다운 선소항구, 고즈넉한 토촌의 쐬섬, 남해 진산 망운산의 물을 받아 내려 강진만으로 들여보내는 봉천 부근의 해안에 접한 곳이면 어디라도 좋다. 강진만을 모두 볼 수 있는 아마 군둔산 중턱 어디쯤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남해 어디라도 좋다. 남해의 모두가 좋기 때문이다.

남해는 해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많은 200종의 철새가 찾아오는 새들의 낙원이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물새들 가운데 검은머리갈매기, 검은머리흰죽지, 노랑발도요, 중부리도요, 4종류가 전 세계 최소 숫자의 1% 이상 남해 갯벌에서 살고 있다. 특히 IUCN(국제자연보호연합)특별보호종으로 지정된 휜목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 쇠청다리도요사촌 3종류와 천연기념물인 팔색조와 검은머리물떼새가 존재하고 있다. 새는 생태계의 지표종으로 새들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는 사람이 살수 없다고 어느 자료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신감과 희망을 보며

석식을 하기 전 사랑채의 아늑한 공간에서 1차 간담회가 1시간 이상 진행되었다. 전문가들의 발표는 2019년 제1회 KBF(한국철새박람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자양분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심도 있게 차분히 진행 되었으며 미해결된 사안은 명품게스트하우스에서 2차 간담회로 미루고 석식으로 들어갔다. 멸치 쌈 정식, 고향 맛이 살아 숨 쉰다. 그리고 질 좋은 고향 바다의 멸치볶음은 다른 어느 곳에서의 맛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하다. 그리고 해양체험활동을 자원한 6명의 회원이 바다로 나가 해양체험에서 잡아 올린 생선을 굽는 냄새가 고즈넉한 해안에 짙게 깔린다. 일일 갑판장이 되어 쿨러에 가득한 어획고를 올린 필자는 팸 투어가 끝나는 날까지 일등 갑판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해양체험에서의 어획고?
해양체험을 마치고

숙소인 명품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회원들은 주민사업체 활성화 토론회인 제1회 KBF(한국철새박람회) 성공개최를 위한 2차 간담회를 가졌는데 전문가들은 좋은 의견들을 많이 내어 놓았다. 아무도 봉천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갈대밭에 가려져있는 태양광 발전의 중단된 폐허를 본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당연히 철새들의 환경과 먹이가 되는 봉천의 수질과 그 물에 사는 물고기들도 관찰의 대상이 되어야 할 텐데 이 분들은 카메라와 망원경의 포커스를 철새들에게만 맞춘 듯하다. 나는 간담회의 자리에서 내 고향 강진바다의 치부를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 분들은 갈대밭에 가려진 태양광 발전의 현장에는 못 가봤을 것이다. 그 걸 보고 가만있을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더 알려지기 내년 2월 전에 우리 고향에서 조용히 처리해야 할 일인 것 같다.

2차 간담회의 주된 의제에 대한 결론은 강진만에 대해 물새들의 보금자리인 습지를 야금야금 먹고 있는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이번 KBF(한국철새박람회)를 통해 강진만이라는 철새 서식지를 널리 알리고 그리고 강진만은 미래 세대에 크나큰 지역사회의 미래를 담보하는 사례로 남아서 전 지역으로 파급효과를 내는 성공적인 대회가 되기를 모든 단체에서 힘을 보태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2019년 2월 15일~17일 3일간 시작되는 제1회 KBF(한국철새박람회)가 너무 촉박하지 않느냐는 우려에 대해서 조세윤 회장은 이미 남해군 의회에서 3,000만원의 예산을 통과해서 지원해준 사업인데다 다른 유관단체의 협조를 얻어 큰 욕심 내지 않고 알찬 대회를 열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하였고 이 계획은 벌써 1년 전부터 준비해온 것이기 때문에 이제 실행만 남았다고 하면서 1월 10일까지 개별단체에 취지, 내용, 협조사항의 공문을 보낼테니 많은 협조를 부탁한다고 하였다.

둘째 날에 물건의 방조어부림과 독일마을 방문을 마친 회원들은 남해인의 지혜와 조국근대화의 밑거름이 되었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눈물어린 이야기와 그 당시 국가 원수에 대해 다시 감명을 받는 기회를 가졌고 어제 돌아본 가천 다랭이 마을과 바랫길 등의 남해생태관광자원과 연계한 탐조활동에 큰 기대와 희망을 걸 수 있다는 점을 이구동성으로 말했으며 남해는 다른 지방과 차별화된 유배문학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고 한국최초의 유배문학관이 있으며 독특한 특산물이 많이 나고 죽방렴 같은 조상의 지혜가 서려있는 곳 등 생태관광자원이 무궁무진한 만큼 2019년 2월 15일~17일 3일간 개최되는 제1회 KBF(한국철새박람회)에 더욱 성공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으며 조세윤 회장은 거기에 대해 이미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이 완성된 듯 개략적인 프로그램을 발표하기도 했다. 즉, 유배문학관이나 실내체육관에 부스 수 십 개를 만들어 참여 단체, 군민들이 쓰게 하고 각 지역의 특산물도 전시하고 선소와 토촌 주변의 해안도로를 계속 순환운행하며 조류탐사 전문가들의 설명을 곁들이면서 생태관관광과 연계될 수 있도록 문화관광 해설사의 활동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파독전시관의 한 장면(지하 1Km 갱도에서 작업하는 모습)
조세윤 회장과 서울 팀
독일마을 관람 전 조세윤 회장의 설명

한국관에서 점심을 먹을 때 남해군의 담당과장이 나와 남해를 찾아온 조류전문가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으며 성공적인 제1회 KBF(한국철새박람회)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라는 부탁의 말씀을 전하고 다시 유배문학관으로 돌아온 회원들은 내년 대회 때 만나기를 약속하며 각자 자기 지역으로 돌아갔다.

유배문학관에서 다른 분들과 내년 2월에 만나자는 작별인사를 하고 필자는 두 분을 안내하여 효자문 삼거리에서 시내로 들어오며 전봇대 전깃줄이 없는 남해 문화에비뉴를 걸으면서 우리 고향의 문화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 다시 두 분과 함께 택시를 대기료 포함 왕복으로 계약하여 금산으로 달렸다. 서울로 올라갈 17시 버스를 19시로 막차로 바꿨다. 언제 봐도 감동인 남해 금산, 보리암에서 점점이 떠있는 섬과 바다를 바라보는 자체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오죽했으면 필자의 3번째 시문집 ‘읍성의 문창에 시혼걸기’의 표지는 이것으로 했을까?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허황옥 황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쌓았다는 보리암 삼층 석탑에 나침반을 놓고 신비한 이변을 두 분께 보여드렸다. 다른 곳의 금산관광을 마치고 저녁식사는 남해 재래시장에 들어와 수족관의 살아있는 활어도 구경하고 생굴과 마른 고기를 안주하여 남해산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물메기국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마치고 터미널로 가서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팸 투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춰보는 시간을 가졌고 남은 시간은 이번 1박 2일에서 남긴 추억의 사진들을 카톡으로 서로 전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금산 보리암에서 바라본 바다
금산 상사바위
서포 김만중 선생 초옥 앞에서
봉천사 묘정비(鳳川祠 廟庭)
孝子門(永慕門)
읍 문화 에비뉴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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