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0:58 (토)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본 황금송(黃金松)의 정수리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본 황금송(黃金松)의 정수리
  • 감충효
  • 승인 2019.01.05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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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물결 송뢰, 그 자체입니다. 부분적으로 은백색을 띈 변이가 일어나고 있음도 관찰됩니다.
황금물결 송뢰, 그 자체입니다. 부분적으로 은백색을 띈 변이가 일어나고 있음도 관찰됩니다.

어느 산 정상까지 가는 새로운 길을 찾다가 암벽과 청송사이에 숨어있는 황금송을 발견한 그 감동은 지금도 사그라들이 않습니다. 이 번의 암벽 타기는 지난 번 보다 쉬웠습니다. 눈과 얼음이 거의 녹은 데다 지난번에 이미 타고 오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황금송 전체의 모습을 담기는 불가능 했습니다. 주변의 키 큰 청송(靑松)들에 가려 나무 전체의 일부분만 보이고 그것도 그림자에 가려 황금빛을 느끼기엔 부족합니다. 어차피 나무 전체의 촬영은 못하더라도 어느 한 곳이라도 확실히 포인트를 잡을 생각을 하다가 약간 위험한 생각을 합니다.

키 큰 나무를 타고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수리 부분은 확실히 보이리라는 생각으로 조금 떨어진 높은 소나무를 타고 오릅니다. 실수해 떨어져도 절벽으로는 떨어지는 위치가 아니라서 다행이었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뒷산 노송의 딱따구리 집을 꺼내려 아름드리 소나무를 타고 오르던 추억을 반추합니다.

참 무모했었지요. 친구들과의 내기에서 저 노송 꼭대기의 딱따구리 집을 떼어오면 그 날부터 대장이 되는 내기였습니다. 자칫 잘못하여 떨어지면 살아남기 힘든 아파트 3, 4층의 높이를 대장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올랐던 시절~

하지만 삭정이만 밟거나 잡지 않으면 무사히 올랐다가 내려와서 대장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무감에 거의 아무런 사고 없이 이런 일은 이루어지곤 했는데 결국 그 원천은 담력과 체력이었습니다.

딱따구리 엄마 아빠가 자기 새끼집을 향하여 오르는 침입자에게 목숨을 걸고 달려듭니다. 날카로운 부리로 머리며 얼굴을 쪼고 발톱으로 할퀴지만 아름드리 나무기둥을 잡고 있는 손을 휘저어 쫒을 수도 없습니다. 그냥 쪼이며 목숨을 건 내기를 완수해야만 합니다.

순전히 담력과 체력과 지력을 겸비해야만 대장이 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대장의 명령에 따라 딱따구리 새끼를 먹여 살릴 곤충을 잡아와야 하고 등하교 때 대장의 책가방을 들어줌은 물론 다른 동네 아이들과 힘겨루기를 할 때도 대장의 작전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가만 놔두면 어미가 잘 키울 딱따구리를 위험을 무릅쓰고 새끼는 왜 데려와서 먹여 살리느라 친구들에게 고생을 시켰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나오지를 않습니다.둥지를 떼어 올 때 집에까지 따라와 시끄럽게 울던 딱따구리는 새끼가 다 클 때까지 집안의 감나무와 오동나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울어댑니다. 눈도 뜨지 않은 새끼들에게 친구들이 잡아온 배추흰나비 애벌레와 잠자리를 주면 잘도 입을 벌려 먹이를 먹었고 쑥쑥 크는데 둥지를 떠날 쯤에는 딱따구리 엄마새와 아빠새가 감나무 위에서 더욱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어느 순간 집안에서만 날아다니던 새가 어미새가 있는 감나무로 한 마리씩 포롱포롱 날아오릅니다. 친구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잘 가라고 손을 저어줍니다. 새집떼끼 대장놀이가 끝나는 시점입니다.

대개 봄철은 이렇게 새집떼기, 시냇가에 무거운 돌 들기, 숨 한 번 들이키어 버들피리 오래불기 등으로 대장뽑기를 하다가 여름이 되면 물밑에 깊이 들어가기, 바다 헤엄쳐 무인도로 건너가기, 해저동굴에 들어가 물고기 잡아오기 등, 가을이 되면 머루나 다래 등 산열매 많이 따기, 억새풀 숲 술래잡기 오래 견디기, 등, 겨울이 되면 꿩 사냥, 처마 밑 참새 집 뒤지기, 뒷산 가파른 언덕에서 눈썰매 타고 내려오기 등으로 거의 계절마다 대장을 새로 뽑았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가을 날 처마 밑의 참새 집에 팔을 집어넣었다가 참새를 잡아먹으러 들어간 팔목만 한 큰 왕뱀에게 물린 친구를 본 일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뱀에 물린 채로 참새가 아닌 큰 왕뱀 꺼집어내기에 성공하여 당연히 대장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 친구 전국 초등동창회 때 만나면 그 때 뱀에게 물렸던 팔뚝을 보이며 우리 어린 추억에 파안대소하곤 했습니다.

그런 일은 담력도 담력이거니와 뱀에 대한 지식이 있기에 가능 했습니다. 비교적 몸이 작은 살모사, 까치독사 등 맹독이 있는 뱀과, 크지만 독이 없는 뱀을 알아차릴 수 있는 파충류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팔 전체를 칭칭 감고 팔뚝을 물고 있는 왕뱀을 떼어 내어 그 처마 밑의 구멍에 다시 넣어주었습니다. 보통 집안에 살고 있는 큰 뱀은 지킴이라 해서 영물로 취급하는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그대로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왕뱀이 사는 집은 곡식을 축내는 쥐들이 오금을 못펴고 감히 식량창고에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큰 쥐도 이런 큰 뱀의 주식이 되기 때문이며 닭장을 노리는 족제비나 해로운 동물이나 곤충들이 접근을 못하기 때문에 집을 지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그렇다고 사람에게 해를 주지도 않고 물려도 독이 없으니 금상첨화 지킴이 역할을 했던 거지요. 그리고 우리 조상님들은 어떤 신령스런 의미를 이 지킴이 왕뱀에게 부여했던 것입니다.

이런 추억이 잠간 뇌리를 스치다가 아름드리나무를 타고 오르는 현실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다리나 팔은 깁스 해야하는 부상을 입을만한 상황임을 간파합니다.

어느 순간 황금송을 내려다 보다가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그냥 황금덩어리입니다. 저 황금송 머리를 볼 수 있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누가 이런 암벽을 기어올라 그리고 큰 소나무를 타고 이런 광경을 목격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나 자신 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 나이에 소년시절을 생각하고 높은 나무를 탈 생각을 하다니...

작년도 빈 솔방울이 달려 있으나 나무 주변에는 솔씨가 자라날 환경이 아니었기에 황금송은 커녕 다른 청송의 어린 소나무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키 큰 소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기에 여기에 솔씨가 떨어져 자생으로 자라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이제 솔방울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가을이 오면 그 때는 다시 다른 작전을 세워야 합니다. 긴 장대 하나면 솔방울 채취는 간단합니다. 굳이 오늘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아름드리 소나무를 타고 오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베란다의 묘포장에 파종하여 몇 년을 키우면서 2대, 3대까지의 황금색 유지를 관찰해야합니다. 바람에 떨어진 황금송 솔가지 하나를 주워 와서 촬영을 해둡니다.그리고 이 황금송은 철에 따라 약간씩 색깔이 바뀐다고 했으니 그 것도 관찰대상입니다.

 

바람에 떨어지 황금송 솔가지
바람에 떨어진 황금송 솔가지

금년 한 해도 끝나 가는데 작년에 이어 이 황금송 자라남을 기쁘게 관찰하고 저를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내년에는 더 희망찬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원해봅니다.

정원수를 키우는 묘표장에 가면 황금송을 팔고 있지만 지금 필자가 암벽에서 발견한 그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연륜이 다르고 사는 위치가 다르며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변이한 것이 아닌 자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몇 십 만 분의 일 확률인 돌연변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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