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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暴雪)에 드는 이유
폭설(暴雪)에 드는 이유
  • 감충효
  • 승인 2019.02.16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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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내린 눈은 많이 왔다지만 몇 년 전의 눈에 비하면 미미할 정도다. 그해 이른 아침 폭설이 내린 날은 하여튼 눈사태에 파묻힌 기분으로 잠을 깨었기에 오늘 눈 보다는 그때를 돌이켜 보는 것이 훨씬 실감난다.

이른 아침에 인적도 없고 교통도 없는 동네는 몇몇 집에서 흘러나온 빛줄기만 희미하게 자유로울 뿐 모든 게 갇혀버렸다. 보통 때 같으면 동네 어귀 해주 댁 삽살개가 온 동네를 휘젓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닐 시간이지만 오늘은 자기의 키를 몇 배 넘는 산더미 같은 눈더미에 기가 질렸는지 미동도 않는다.

이 정도의 폭설이 내리면 필자는 자칭 폭설증후군이 자체적으로 발병한다. 일종의 몸살이다. 이열치열 폭설로 생긴 병은 폭설에서 풀어야 한다. 배낭에 아이젠을 넣고 스패츠를 챙기고 스틱을 조인다. 방풍 재킷을 배낭에 넣고 물과 비상식은 필수다.

이른 바 통고체험을 통한 인간 여물리기와 설산의 고독에서 몇 가지 주제를 떠올리는 작업이 시작된다. 글의 주제라도 좋고 인간 삶의 방향 수정도 좋고 몸과 마음을 다듬는 수련이라 해도 좋다. 무릎을 차오르는 폭설이 온 세상을 덮어버린 하얀 설원에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허기에 지친 노루나 고라니나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굴러 떨어진 한 무리의 짐승들이 협곡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지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다시 바짝 스틱을 조이고 아이젠 끝을 바위자락에 더 깊이 찔러 넣는다. 자칫 실족하면 협곡으로 굴러 떨어진 멧돼지 꼴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눈이 허벅지를 웃도니 걷는다기보다는 헤엄을 치는 형국이다. 하늘 높이 솟아있던 소나무가 활처럼 휘어져 아치형을 그리며 그 큰 키의 머리를 땅위에 내리고 있다. 탄력 좋은 대나무도 이 정도면 견디다 못해 폭죽을 터트리며 갈라지기 마련이다. 눈의 하중을 이기지 못해 그 큰 키의 머리를 땅에 대고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이 노송이 상반신을 일으키는 것은 눈이 녹아야 가능할 것이다.

오늘의 주제를 본다. 몸을 굽히는 유연함이 대나무가 아닌 소나무에도 있으니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대나무도 부러져야 할 그 각도에 견디고 있는 노송의 인내는 어디쯤이 한계일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 무시무시한 폭설이 녹을 때까지 견뎌낸다면 위에서 말한 통고체험을 통한 인간 여물리기와 설산의 고독에 대입시켜 볼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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