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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贖罪)
속죄(贖罪)
  • 감충효
  • 승인 2018.12.18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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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라면 죄다.

사람이 밟아서 뭉개고 휩쓰는 바람에 흙이 패이고 흙속에 묻혀 있어야 할 나무의 뿌리는 바깥으로 노출되고 다시 짓밟혀 만신창이가 된 채 보기에도 처참한 모습을 많이 본다. 필자는 여러 사람에 휩싸여 아무 생각 없이 쿵쾅거리며 내 건강만을 위한 이기주의 산행을 일삼던 젊은 날을 반추해보며 요새는 속죄의 시간을 갖는다. 적어도 내가 무너뜨린 만큼은 다시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과 짐승이 다름이 무엇인가?

산돼지나 노루, 사슴, 고라니가 나무뿌리를 캐어먹고 나무를 쓰러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로지 먹이를 구하는 것 밖에 모르는 생존차원의 본능적인 동물적인 행동을 누가 벌주고 탓하랴. 그것도 뿌리를 캐고 잘라 먹으면 그 나무가 죽으리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한참 낮은 지능을 가진 동물이 아닌가.

하지만 인간은 달라야 한다.

나무만 하더라도 바깥으로 노출되는 뿌리는 수분과 영양분을 줄기와 잎에 보급할 수 없기에 나무는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죽을 것은 뻔하고 몸통을 지탱하던 뿌리가 더 이상 땅을 붙잡고 견디기에 힘들어 비바람 몇 번 몰아치면 결국 쓰러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숲이나 산에서 풍광과 시원한 나무그늘을 즐길 뿐만 아니라 내품는 피톤치드로 우리 인간의 생존에 크나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그 알량한 과학을 통해 알고 있다면 당연히 그 고마움에 답해야 한다. 인간과 나무는 공생과 상생의 관계와 다름없는데 어느 한쪽이 배신하고 있는 것이 요즘 등산로 주변의 현실이다.

이런 일로 나무가 넘어져 등산로 주변에 반 쯤 쓰러져 있으면 지자체나 관련단체에서는 나무를 일으키고 지주를 세워 그 나무를 살리기는커녕 엔진이 달린 기계톱을 가져와서 싹둑 잘라버리기를 능사로 한다. 편리하기는 하다. 시간과 비용도 적게 든다. 편의주의적 타성이다. 새로운 마인드의 친환경적 생활태도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 보인다. 어떤 지자체와 관련단체에서는 산의 초입에 흙과 포대를 마련해 놓고 나무뿌리가 드러난 곳을 채워주기를 등산객에게 호소하지만 협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산을 찾는 등산객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함이 첫째인 것 같다.

사람이 많이 찾는 산은 그 지리적 여건 때문에 몸살을 지속적으로 크게 앓는다. 하루에도 수 천 수만 명이 산을 오르내리는 통에 흙은 무너져 내리고 길은 패이고 나무뿌리는 드러난다. 흙을 채워 주지 않으니 드러난 뿌리는 공중에 떠있다. 떠 있는 뿌리를 또 밟아 피부를 벗겨내니 영양분과 수분의 통로는 막히고 더 이상 뿌리로서의 역할을 못하니 나무는 뽑히고 마는 것이다.

오래전 수락산 북쪽을 올랐을 때다.

급경사의 험한 등산로에 들어 위만 쳐다보고 급피치를 올리는데 공제선상에 노송 한그루의 처참한 모습이 보인다. 푸른 하늘에 떠있는 거미줄 같은 소나무 뿌리의 앙상함이 측은하기 짝이 없다. 땅에 묻혀서 나무의 몸통을 지탱하고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 올려야 할 뿌리가 저모양이니 쓰러지거나 고사할 것은 시간문제다.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의 돌을 모아 담을 쌓고 주변의 낙엽과 흙을 모아 넣어본다. 어림없다. 뿌리 사이의 공간이 너무 넓었고 담 쌓을 돌도 한정적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해도 서산에 지기 시작해서 정상 오르기는 포기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다음 날은 5살 먹은 손자 녀석을 데리고 어제의 그 산을 타고 올랐다. 뿌리를 지탱하고 있던 흙을 사람이 밟아 무너뜨리는 바람에 뿌리가 공중에 떠있는 노송이 있는 7부 능선까지는 2시간이 족히 걸린다. 5살쯤 먹은 아이들의 피로회복속도는 어른보다 몇 배 빠르다. 할애비 따라 산 오르기를 즐기는 아이라서 같이 데리고 온 것이다. 단 한 가지 절벽이 많아 아무래도 밀착해서 데리고 가야 하는 어려움은 있다. 어린 아이가 이 산의 7부 능선을 오르는 것을 보고 등산객들은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어제의 그 노송아래 배낭을 내려놓는다. 배낭에 넣어온 포대를 꺼내어 나무뿌리가 없는 평지 쪽으로 가서 흙을 군데군데 야전삽으로 퍼 담는다. 그리고 나무뿌리가 앙상히 드러난 곳의 밑 부분을 지탱하고 흙의 유실을 막아줄 큰 돌부터 주변을 돌아다니며 모아본다. 돌이 귀한 산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천신만고 끝에 구해온 큰 돌로 담을 쌓고 앙상한 나무 뿌리 사이에는 흙과 낙엽을 섞어서 채우고 그 바깥에는 흙 포대를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5살짜리 손자 녀석도 신나게 손 삽으로 흙을 파서 포대에 넣어 나르며 할애비를 돕는다. 하지만 이런다고 이 노송이 안전할리 없다. 얼마간 견딜지 모르지만 자꾸 밟아 무너뜨리면 얼마나 견디겠는가? 방법은 한 번씩 와서 확인하고 보수를 하는 길 뿐이지만 나라고 언제 다시 오리라는 기약은 없다.

 

모르긴 몰라도 지자체나 관련단체에서 등산로를 정기점검 하다가 이곳이 눈에 띄어 대책을 세웠으면 하는 한 가닥 희망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태로 봐서 난망한 일이 아닐까?

그 뒤로는 4년 동안 그 쪽 산행은 하지를 못했다. 한해가 가기 전에 그 쪽으로도 맨발 산행을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모아둔 마대포대를 챙긴다. 그 때 그 손자 녀석이 서울에 있으면 불러서 같이 가 볼 텐데 다른 나라로 아빠 엄마 고모 따라 자기 여동생과 같이 떠나 간지가 2년이 지났다. 금년에 6학년을 마치고 마지막 방학에 들어갔다고 연락이 왔다. 오늘이 마침 그녀석의 생일이라 할매는 장손 손자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서 축하해주면서 카톡으로 촛불 14개를 그려 보내고 나 역시 축하 메시지를 보내준다. 몇 년 전까지도 이 녀석을 명산대천으로 데리고 다니며 친환경 교육 및 인성교육을 맡아 격대교육(隔代敎育)을 해온 할애비로서는 그 녀석의 14번째 생일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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