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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꽃섬 4
웃어라 꽃섬 4
  • 남해인터넷뉴스
  • 승인 2023.01.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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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나무

 

농경지가 얼어서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씨앗을 뿌린 후 토양을 밟아 주는 일을 답압(踏壓)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방가 후에 학생들을 동원하여 온 보리밭을 자근자근 밟으며 동무들과 즐거워했던 일들이 새롭다. 보리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보리가 들뜨지 않고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아이들이 손을 잡고 한 줄로 늘어서서 보리밭을 자근자근 밟았다.

가천 다랭이 마을에 한그루의 기특한 나무가 있었다. 이곳의 명물 가천암수미륵바위 곁에 서있는 ‘돈 나무’가 그것이다. 사람들이 암수미륵바위에 아들 딸 낳게 해달라며 소원을 빌 때 그 돈 나무 그늘 아래 모여서서 기도를 드렸다. 그 때문에 돈 나무가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나무 주면의 토양들이 사람들에게 밟혀서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토양의 미생물들이 활동을 못하게 된 것이다. 식물학자 오병훈 선생께서 남해에 야생화를 촬영차 오셨다가 그 현장을 보시고 한탄하시며 빨리 보호하지 않으면 고사 할 것이라고 걱정하신 적이 있다.

본래 이 나무는 줄기와 뿌리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또는 열매가 갈라지면서 나오는 끈적끈적한 유액 때문에 파리들이 달라붙어서) ‘똥 나무’로 불리다가 ‘돈 나무’가 되었다. 다른 이름으로 '섬음나무', '갯똥나무', '해동' 등으로 불린다. 상록성이면서 잎 모양이 좋아 남부지역에서는 정원수나 울타리를 만드는데 아주 우수한 품목이다. 추위에 약해 중부이북에서는 밖에서 월동이 어렵다. 추위나 음지에는 약하지만 염해나 공해에도 강해 남부의 바닷가나 도로변 같은 곳에서 잘 자란다. 전형적인 한국의 자생식물로써 남부 해안 및 도서의 바위틈이나 양지바른 언덕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말이 ‘포용, 한결같은 마음’이다. 가천의 돈 나무는 그야말로 한결같이 모두를 포용하는 모습으로 그 곳에서 소원을 비는 이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있었다.

나무는 지상의 모든 생명을 키우는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한 그루의 나무는 광합성을 통해서 탄수화물을 합성하여 생명을 키운다. 지구에서 생산자는 오직 녹색식물 밖에 없다. 녹색식물만이 산소를 생산하여 우리가 호흡할 수 있도록 하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 줄곧 나무에 의존해서 삶을 영위해 왔다, 나무가 주는 산소를 마시고, 나무가 만드는 과일을 먹고, 나무에서 얻은 섬유로 옷을 입으며 집을 짓고 산다. 그러다 죽으면 나무로 만든 관속에서 영면한다.

나무에서 염료를 얻고 병이 나면 치료제를 얻는다. 그야말로 사람은 나무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셈이다. 나무가 모여 만든 숲은 우리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고, 꽃은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노거수는 살아있는 역사를 간직한 생명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고목을 통해 한 시대를 살았던 역사의 인물을 만나고 그 시대의 사회상을 읽으며 민속과 문화를 알 수 있다. 나무는 또 사람들에게 자연의 미학을 일깨워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와 그 나무에 깃들인 옛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무의 가치는 경제적으로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다. 마치 공기 속에 살면서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나무에 의존하여 살면서도 나무의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있다. 한 마디로 나무는 생명이며 부활의 상징이다. 옛 사람들은 죽어서도 한그루의 나무와 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전설과 신화 속에서 사람이 곧잘 꽃이나 나무로 태어난다. 우리의 심청이도 연꽃을 통해서 되살아나지 않았던가.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디든 공간이 있으면 사람들은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려고한다. 나무는 그야말로 지구의 생명을 살리는 최초의 어머니이다. 오래된 나무는 살아온 세월만큼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에 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문화가 나무들 가지가지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라고 선생께서 쓰신 ‘서울의 나무, 이야기를 새기다’의 서문에서 주신 말씀이다.

다랭이 마을의 암수미륵바위에 소원을 빌던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던 돈나무가 몇 해 전 불어 닥친 태풍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 정도 태풍에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을 것인데 방치해 버린 바람에 넘어져버렸다. 오래된 나무는 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그만큼 강해서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저렇게 큰 돈 나무에도 그런 유전자가 있을 수 있으니 잘 보호하라는 노 식물학자의 말씀이 귀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그 나무가 없다. 사람들은 이제 그곳에 그런 나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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