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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꽃섬 3
웃어라 꽃섬 3
  • 남해인터넷뉴스
  • 승인 2023.01.2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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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산밭정신

 

“가네 산밭 큰 애기 중의 밑이 석자 다섯 치”라는 말이 있다. 이 마을 큰 애기들의 바지폭이 아주 넓다는 말이다. 비탈지고 험한 돌산에서 크고 작은 돌들을 이고 지고 다니며 가천의 산밭을 일구어 내기 위해서는 활동하기 편한 폭이 넉넉한 바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가천의 산밭은 남해 사람들의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척박한 산밭을 일구어낸 억척스런 삶이 정신이다. 바다에서부터 설흘산과 응봉산의 거의 팔부능선에 이르기까지 석축을 쌓아 조성한 산밭은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과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더욱 시리게 전해오는 삿갓배미 이야기는 모질게 살아낸 이 땅의 역사가 되었다.

옛날에 마을에 살던 농부가 비가 오는 날 삿갓을 쓰고 논일을 나갔다. 한 배미 두 배미 열심히 산밭을 일구는 사이에 비가 그쳐서 삿갓을 벗어두고 계속 일했다. 해가 질 무렵에 허리를 편 농부는 오늘 만든 논배미를 세어보았다. 그런데 한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던 한배미가 삿갓을 들자 그 속에 숨어있었다. 삿갓 속에 들어갈 만큼의 작은 땅도 놀리지 않고 일구어낸 억척스런 삶의 현장이다. 불멸이 산밭정신이다.

남해사람들에게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 두엄(거름)이 필요했다, 그 시절에는 인분이 훌륭한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에 인분을 구하기 위해서 바다 건너 여수로 인분을 사러갔다. 남해에서 잡은 전어며 칼치 등 생선을 한배 가득 싣고 가서 여수사람들의 인분과 바꾸어 와서 농사를 지었다, 여수사람들이 인분을 팔 때 양을 부풀리기 위해서 물을 섞었다. 남해사람들을 손가락으로 인분을 찍어서 맛을 본다. “물탓제” 하고 흥정을 다시 한다. 똥 맛을 보면서까지 삿갓배미를 일구어낸 남해사람들의 억척같은 삶의 정신, 똥배정신이다.

마을의 안마당에 우뚝 솟아있는 암수미륵바위가 상징적으로 가천을 대표한다. 저기 불러오는 배를 내밀고 누워있는 암 미륵이 천년미륵을 생산하면 이웃마을 홍현에는 쌍무지개가 뜨고 숙호에 엎드려있던 호랑이가 벌떡 일어나 미륵님을 등에 태우고, 지혜의 다리 석교를 지나 신성한 몸을 용소에서 씻고 용문에 들어 공을 이룬다. 중생을 제도코자 큰 걸음 하시는데 급한 마음에 발이 남해 바다에 빠질 지경이라 도톰바리(미조)가 냉큼 받아 모신다. 앵강만 건너 백련에서는 우담바라가 피어나고....

이 마을에는 특별한 전래문화가 있다. 밥무덤이다. 쌀에 대한 애착이 신앙으로 변모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밥무덤에 제사를 지낼 때는 밥을 정갈한 한지에 서너 겹으로 싸서 정성껏 묻고, 흙으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반반한 덮개돌을 덮어둔다. 제물로 넣은 밥을 쥐, 고양이, 개 등의 짐승이 해치면 불길한 일이 생기거나 신에게 바친 밥의 효력이 없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력 10월 15일 주민들이 모여 마을 중앙에 있는 밥무덤에서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을 축원하는 동제를 지낸다. 밥무덤의 또 다른 목적은 먼 바다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어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혼령들을 위해 밥을 묻어둔다는 의미도 있다. 밥무덤에 제사를 지낸 일주일 후 음력 10월 23일 밤 12시경 미륵바위로 가서 미륵제를 올린다. 밥무덤의 동제는 미륵제를 지내기 위한 식전 행사라고도 볼 수 있다.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유독 밥무덤 제사를 지내는 까닭은 상대적으로 경작할 논이 적어 쌀이 귀한 지역이므로 귀한 밥을 땅속에 넣는 것은 마을을 지켜주는 모든 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풍요를 점지해 주는 땅의 신, 즉 ‘지모신’에게 드림으로써 마을의 풍요를 염원하는 것 이다. 과학문화유산답사기에서 소개하는 밥무덤에 대한 이야기다.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777번지 일원. 다랭이 논은 선조들이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깍아 만든, 인간의 삶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형성된 곳으로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바다를 향한 산비탈 급경사지에 곡선 형태의 100여 층의 논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어 배후의 산과 전면의 넓게 트인 바다가 조화를 이룬다. 농촌 문화 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경관적(예술적)가치가 뛰어나다. 2002년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되고 2005년 1월 3일 국가지정명승 제 1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마을 앞에 세워둔 안내문에 적혀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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