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4 07:32 (일)
웃어라 꽃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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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인터넷뉴스
  • 승인 2023.01.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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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래기의 복수

 

몇 번이나 다닌 길이지만 항촌에서 바닷길을 따라 가천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하다, 전국의 낚시꾼들이 모여드는 유명한 감성돔 포인터이기도 하다, 항촌을 지나면서부터 갯바위 지역이다, 오른쪽으로 막막한 대한해협을 끼고 한참을 오르내리고 돌아서고를 하다보면 바다 한가운데 뽀쪽한 섬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소치도다, 가천이 가깝다

태풍에 쓸려가 버린 구름다리를 지나면서 고개를 들고 산 쪽을 보니 응봉산의 욱조문과 설흘산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에서 부터 차근차근 쌓아올린 백팔 층의 다랭이 논이다. 고려시대에 송나라 서긍이 고려도경에서 언급한 “고려의 산밭들은 마치 사다리를 걸어놓은 것 같다” 하고 한 것처럼 정말 켜켜히 쌓아올린 산밭들이 사다리처럼 보인다.

허급지급 돌아온 갯바위 길을 되짚어보며 잠시 쉬어가려고 평평한 자리를 고르고 있는데 저기 위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가만히 보니 참 기가 막히는 광경이다, 응봉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굵어서 작은 다리를 만들어 놓은 주변의 논둑 위에 한 아주머니가 쪼그리고 앉아있고, 그 아래쪽 돌로 쌓은 논둑 중간에 한 아저씨가 돌 담쟁이 사이에 손을 넣고 뭔가를 붙잡고 있다, 해마다 요즘 철이면 망대(집지키는 구렁이)들이 가끔 나타나기도 한다, 그 아저씨는 구렁이를 잡기위해서 돌로 쌓아둔 논둑을 이미 상당히 훼손시키고 있었다, 나는 화가 나서 “여보시오 야생동물을 함부로 잡으면 벌금이 삼백만원이요 그냥 두시요”하고 나무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 아저씨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만 손을 빼려고 하는데 위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꽥 소리를 지른다 “꽉 잡아라”

가천 마을 암수미륵바위의 전설이야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이 마을에서 전해오는 반지래기 이야기는 하고 가야 할 것 같다,

마을 터줏대감인 할매 막걸리 집에서 돼지고기 비계를 조금 얻어 놀러온 아이들을 대리고 바닷가로 내려갔다, 신기한 것을 보여 준다는 내말에 꽤 많은 어른들도 따라나선다, 바닷가의 얕은 물속에 돼지고기조각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손바닥을 오무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반지래기라는 미꾸라지를 닮은 물고기(미끈망둑)가 손가락 사이를 헤집고 들어온다, 그냥 그렇게 잡으면 된다, 그렇게 몇 마리를 잡아주자 애 어른 할 것 없이 서로 해보겠다고 난리다,

왜 이 반지래기는 돼지고기에 환장을 하는 것일까? 이 마을 가천의 다랭이 논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다랭이 논은 응봉산과 설흘산에 쌓여있는 너들이(애추)의 돌들을 가져다가 축을 쌓아서 만든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는 바다에 일을 나가고 마을의 여자들이 그 돌들을 이고 지고 날라서 축을 쌓고 흙을 채워서 논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돌밭에는 무서운 동물이 살고 있었다. 바로 뱀이다. 여자들은 이 뱀을 보고 놀라서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물려서 큰일을 당하기도 한다. 마을에서는 이 뱀을 몰아내기 위해서 뱀과 상극인 돼지들을 풀어놓았다. 이제 뱀들이 쫒겨서 바닷가로 내려가 크고 작은 돌틈에 머리를 박고 숨어살게 되었다. 세월이지나면서 뱀들의 머리는 납작하게 좁아지고 몸통을 작아져서 지금의 반지래기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니 반지래기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조상을 다잡아먹고 또 몸마져 이렇게 만들어 버린 돼지들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반지래기들의 복수인 셈이다.

지금은 이 맨손 고기잡이가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 바람에 반지래기 씨가 마를 지경이다. 먹지도 못하는 이고기를 잡아보는 체험을 한 후에는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 주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서 죽이면 그날 밤에 집안에 온통 뱀들이 돌아다닌다고 하니 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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