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9 19:03 (목)
웃어라 꽃섬 l 충혼의 길
웃어라 꽃섬 l 충혼의 길
  • 조세윤
  • 승인 2018.08.16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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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영상관 전경. 찾아오는 길은 경남 남해군 고현면 남해대로 3829번지

23전 23승. 교과서에서 배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전기록이다. 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단 한 번 패하지 않고 모든 전투에서 다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싸움에서 이긴다. 이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교보문고에서 이순신 관련 서적 23권을 구입해 '열공'을 하다 보니 마침내 그 비결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불굴의 의지로 죽음마저도 초개와 같이 여겼던 공의 '충혼의 정신'이었다.

 

공은 결과적으로 지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비결이었다. 자칫 생각하면 비겁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번의 전투라도 패하는 날이면 조선이 멸망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공은 임금의 어명마저 어기면서까지 지는 싸움은 피했다. 언제나 불리한 여건과 상황을 완벽하게 개선하여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전황을 만든 후에 전투에 임했다.

이 길은 1592년 시작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에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장엄한 말씀을 남기고 순국하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처음 육지에 올라 그 시신이 운구되어간 길이다. 오늘 나는 이 충혼의 길을 걸으며 공의 그 불굴의 정신을 고양하고자 한다.

 

광장에 '성웅이충무공전몰유허'가 새겨진 비석이 있고, 이락사로 오르는 입구에 사적 제 232호 이충무공전몰유허 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옛날에는 이곳을 이씨 성을 가진 분이 떨어진 곳이라는 의미로 ‘이락사’라고 불렀다. 첫 번째 돌계단을 올라가니 잔디로 조성된 넓은 광장 한쪽에 "전방급신물언아사" 라고 새겨진 커다란 자연석이 보인다.

 

풀어 보면 ‘전쟁이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라는 의미다. 공이 전사한 지 꼭 400년이 되는 해에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던 유삼남 장군이 세웠다고 한다. 참고로 유삼남 장군의 고향이 남해군이다. 그냥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라고 새겨놓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번째 돌계단을 올라가니 양쪽으로 소나무들이 도열하고있다. 그런데 그 소나무들의 생김이 특이하다. 밑둥에서부터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로 나뉘어서 뻗어있다. 반송이라는 소나무 종류인데 나라를 사랑했던 이순신 장군이 왜구들의 침탈에 갈래갈래 찢어지는 아픈 마음의 투영이었을까? 걸음을 옮기면서 숙연해 진다.

 

세 번째 돌계단 앞에 섰다.  전각이 보이고 전각의 입구 출입문에 ‘이락사’ 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한문으로 쓰여진 이 현판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자존심이 묻어있다. 일반적으로 한문은 글씨의 순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그런데 이 현판의 한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씌어졌다. 글은 너희들 오랑캐의 글로 쓰지만 순서는 우리의 방식대로 하겠다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자존심의 표출이었다고 한다. 비각에도 ‘대성운해’(큰 별이 바다에지다)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것 역시 박대통령의 친필로 글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비각 뒷쪽으로 이어지는 첨망대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철 지난 동백꽃이 처참히 산화하고 있다. 붉디붉은 꽃잎을 땅으로 내려 꽂으며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의미를 생명들에게 일러주고 있다. 동백과 소나무와, 참나무 그리고 다양한 식생으로 약 1km 가량 잘 조성된 이 길은 이락사를 지키는 모충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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